2020. 8. 14. 01:05ㆍ글/밀리
* 塩飴
* 誰ガ為ニ宴ハ続ク
주인공 : 노노하라 아카네가 구원 받는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했더니, 주인공 : 노노하라 아카네가 구제되는 이야기가 생겨났습니다.
이번 작품은 TC03드라마 파트 에필로그 후를 망상한 작품입니다.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으며, 본편 묘사에 가까운 엽기적인 표현도 포함되어 있기에, 그 점을 감안하여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젠가 5인(7인)이 평화롭게 지내는 고도 훈훈한 라이프도 원하네요.
투표 기간중에는 노노하라 아카네를 주인공 배역으로 밀었던 몸으로서, 고도 서스펜스 호러가 이렇게 좋든 나쁘든 화제가 되는 작품이 된 것이 무척이나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돌들의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에서의 멋진 연기를 제공해주신 제작진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기
본 작품은 『THE IDOLM@STER THE@TER CHALLENGE 03』의 드라마 파트 『황혼의 늪』에 독자 해석과 고찰을 더한 2차 창작입니다.
본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구성상 『황혼의 늪』에서 묘사된 장면을 회상하는 장소가 있으나, 그것은 본편을 일부 변경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 작품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에 등장하는 아이돌들이 “배역”으로서 “연기한” 인물들이며, 같은 컨텐츠에 있어서 동명의 아이돌 그 자체는 아닙니다.
다음 페이지부터 본편입니다.
「커……헉……」
「엘레나아!!」
엘레나의 입에서 콸콸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가, 뚝뚝 지면에 떨어진다. 기름이 떨어진 양철 인형 같은 딱딱한 움직임으로 목이 돌고, 허무한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아……카……, 네……」
짜내는 것 같은 작은 목소리. 직후, 실이 끊어진 듯이 그 몸은 무너져 내렸다. 반 정도 열려 있는 입과 빛이 깃들지 않은 눈동자가, 그녀의 생명이 다하였다는 사실을 나에게 고하였다.
「……!」
그러나, 그 슬픔에 잠길 여유조차 눈앞의 현실을 용서해 주지 않는다. 엘레나의 피로 물들은 나이프가 이번에는 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매우 느릿하게 보이는 그 움직임. 나이프를 휘두르는 팔이 느린 게 아니라, 내 시간이 느리게 흐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느낀 것뿐이다. 자신도 신기할 정도로 머리는 냉정하지만, 저 칼에서 도망치진 못한다.
푸욱, 하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나이프가 내 배에 깊숙히 찔려 있었다.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서인가, 칼을 가진 손목이 비틀린다. 직후,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뒤늦게 몸 전체를 덮쳤다.
「아…… 아……」
입 안 가득 퍼지는 철 맛. 비명을 지를 여유조차도 없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지면에 무릎을 꿇었다. 필사적으로 위를 향해 보니. 검은 머리의 소녀가…… 엘레나를, 카오리 선생님을, 리츠코 선생님을 그 손으로 죽여 전신을 튄 피로 물들은 메이드 소녀가, 나이프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아파.
아프고. 뜨거워.
전신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걸,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죽는 구나.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마지막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핫!?」
힘차게 몸을 일으킨다. 커튼 틈새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방에 약간의 빛을 들인다.
「……또, 이 꿈」
의식의 각성을 느끼면서 깊은 한숨을 쉰다. 옷자락을 걷어 올려 자신의 몸을 확인한다.
……그게 단순한 꿈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복부에 남아 있는 큰 상처자국, 그리고 봉합 흔적이 그 날 있었던 일이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고한다.
그 날, 나는 확실히 죽음을 의식했었다. 메이드…… 시호 씨가 휘두르는 나이프에는 일절의 자비도 없었고 확실히 목숨을 빼앗을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저택에서 눈을 떠버렸다. 복부에 치료 흔적을 남기고. 나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남기고.
「아카네 님」
「……윽!」
똑똑, 하는 노크 소리에 이어 이름을 불린다. 반사적으로 몸이 경직된다.
「아카네 님.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식사, 라는 단어에 등골이 얼어 진다. 맹렬한 혐오감에 의해 두통과 구역질이 막 깨어난 몸을 덮친다.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아. 가선 안 돼. 뇌가 그렇게 명령했다.
「……아카네 님」
「으으……」
그러나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시호 씨의 흐릿한 목소리는, 유무를 말 못하게 하는 것.
이 이상 그녀의 말에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이미 몇 번이나, 이 몸에 새겨져 있었다.
몸에 깊이 스며든 공포는 솔직하다. 머리는 싫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다리는 멋대로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윽……우웩……콜록!」
저택 화장실에서, 필사적으로 위 안에 있는 것을 토해낸다. 조금 전 “식사”에서 무리하게 입에 넣어진 것은 벌써 토한 것 같지만, 속이 메스꺼운 건 전혀 없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 지옥 같은 불쾌감은 지금 시작한 게 아니다. 저택에 끌려오고서부터 계속, 내 가슴속은 절망과 혐오에 가득 차 있었다.
*****
저택에서 눈 뜬 첫날 밤. 나는 식탁에 끌려가,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의 광경은 잊고 싶어도 절대로 잊히지 않는 머릿속에 깊게 새겨져 있다. 코를 찌르는 악취, 귀가 썩는 듯한 파리 날개 소리나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 시야에 펼쳐지는 붉고 거먼 웅덩이에, 무언가의 고깃덩어리.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익힌 그 고깃덩어리는 이미 원형을 찾지 못했지만, 정체는 바로 알았다.
「늘 그렇지만, 시호의 요리 솜씨는 훌륭하네」
「감사합니다, 주인님」
「거짓말……이지? 거짓말이지? 이런, 짓……」
담담히 붉고 거먼 그것을 접시에 올리는 시호 씨.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내 반대편에 앉은 이 저택의 주인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으로 즐거운 듯이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당신이 눈 뜬 것을 축하하여, 시호도 진수성찬을 차려주었답니다? 자, 바로 먹을까요」
「아……아아……그런……」
“진수성찬”이라는 말. 게다가, 이 몸의 털에서 소름이 끼치는 겉모습과 냄새…… 틀림없이, 이 무언가는 원래……
「……어머, 왜 그러시나요? 빨리 드시지 않으면 식어버려요. 아니면…… 통증 때문에, 아직 몸이 무거운 걸까」
눈앞의 포크와 나이프에 손을 댈 리도 없이, 떨고 있는 나를 보고, “그 사람”은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신기한 것을 보는 듯이, 먹지 않다니 아깝다고 말하려는 듯이.
그렇다면, 하고 그녀는 계속 말하였다.
「시호, 식사를 도와주렴」
「네」
시호 씨가 식기를 내려놓고 내 쪽으로 걸어온다. 놀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내 귀에 두 사람이 하는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옆에 온 시호 씨는 난폭하게 내 머리카락을 잡아, 들어 올린다.
「아극!」
「아카네 님. 식사입니다. 드셔주세요」
고통에 의해 의식이 되돌아와, 동시에 현실도 고해진다. 억양 없는 목소리에, 시호 씨는 고통에 일그러져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카네 님. 드셔주세요」
「싫, 싫어…… 그런 거, 싫…… 아악!?」
짝, 하며 새된 소리가 식탁에 울린다. 뺨을 스치는 통증과 열이, 시호 씨가 손바닥으로 뺨을 친 것이라고 실감시켰다. 망연한 내 입가에 시호 씨는 스푼으로 접시의 내용물을 옮긴다.
「아카네 님…… 자」
머리카락을 강하게 잡혀, 이 이상 거스르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무언으로 나타낸다. 그래도 나는 눈에서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 필사적으로 그 손을 뿌리치려 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을 터인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뇌리에 떠오른다. 이걸 입에 댔다간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어.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아.
하지만, 무심하게도 그런 저항은 의미가 없었다……
「……」
「아……아아아아아아아!!!」
*****
그 날 이후, 내 입안에서 그 식감이나 맛이 사라진 순간은 한 번도 없다.
입 안에 퍼진 기분 나쁜 식감, 무리하게 목을 통과하게 한 금기의 액체, 그리고 그 후로…… 모두가,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는 감각.
몇 번이나 위의 내용물을 토해내고, 몇 번이나 입안을 물로 가셔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저주. 배 안에 항시 이물이 들어가 있는 듯한, 전신에 신물이 나는 것 같은 감각이 늘 나를 좀먹는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것을 입에 댄 이후, 내 안의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변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변이해버린 무언가. 여기서 계속 살아가면서 언젠간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되어버려. 이 미친 세계에 물들어버려. 그런 확신이 있었다.
수도꼭지를 원래대로 돌리고, 너무 오열했는지 몹시 아픈 머리를 억누르며 비트적거리는 발걸음으로 방을 향한다. 벽에 손을 대면서 걷고 있자, 도중 지나친 취사장으로 이어지는 문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ㅐ…….……요……」
「……?」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시선은 문으로 향한다. 문의 조그만 틈새로 들여다보자, 물 흐르는 소리에 섞여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죄……해……. 송……요……」
목소리의 주인인 시호 씨는, 흐르는 물에 적셔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면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듯했다. 저택에서 유일한 고용인인 시호 씨가 여기에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이상하지 않지만, 지금 그녀의 상태는 평소 감정이 없는 그것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래. 그 때와 닮아있어.
저택에서 도망친 그날 밤. 그녀의 칼이 우리들을 관통한, 그날 밤.
그 때 시호 씨의 목소리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같이, 재촉당하는 듯이 필사적인 느낌도 들었다. 실제로 쫓기고 있던 것은 우리들이었는데.
평소 무표정한 그녀가 보여주는 약간의 정서적 동요. 그것에, 희미한 위화감을 느꼈다.
「……」
「앗」
무언가를 감지한 것인지, 갑자기 시호 씨가 이쪽을 본다. 안대를 쓰고 있지 않는 찌르는 듯한 눈동자에 보여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버렸다.
꾸욱. 하고 수도꼭지가 잠겨, 메이드는 문으로 발을 옮겼다. 나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였다.
「……」
문을 연 시호 씨는 무언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이쪽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영원히 계속될 거 같은 침묵. 이윽고 시호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발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갔다. 메이드복 옷자락을 살짝 흔들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떠나려 한다.
「……저, 저기」
그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말을 걸어버렸다. 천천히 뒤돌아본 시호 씨의 얼굴은 취사장에 있었을 때와는 다른, 평범한 가면 같은 무기질인 표정.
「……무슨 일이신지」
「그, 그게…… 저……」
그녀가 바라보면 몸이 위축되고 입 안이 바짝바짝 타버린다. 그렇게 될 정도로 나는 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있다. 이 사람은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몇 번이나 내 몸에 공포를 새긴 존재이다.
하지만 지금 이 때만은, 내 입에서 힘차게 말이 튀어나왔다.
「……당신은, 어째서. 어째서, “그 사람”을 섬기고 있는 건가요」
열심히, 목에서 목소리를 짜낸다. 시호 씨의 눈썹이 꿈틀 움직인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인가요」
「……“그 사람”이 하고 있는 걸, 용서할 수 있나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렇게나, 무서운 짓을 하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사람”의 제일 가까이에 있는 존재에게 이런 말을 말하다니. 게다가, 뒤에서는 “그 사람”이 하고 있다곤 해도 실제로 손을 쓰고 있는 것은 눈앞의 시호 씨인데.
하지만 시호 씨에겐, “그 사람”처럼 완전히 광기인 게 아니야, 사람으로서의 이성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 방금 전 모습을 본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시호 씨도, 사실은 좋아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지 않나요? 사실은,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나요?」
그래줬으면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무의식에 채워져 있었던 것인지, 필사적으로 말을 계속 한다.
「그럴 게, 방금 전 시호 씨, 몇 번이나──」
「……아카네 님」
그러나, 작게 열린 시호 씨의 입에서 나온 짓눌릴 것 같이 괴로운 목소리에 순식간에 목이 메어 버렸다.
「이 이상 말하시는 것은, 삼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윽! 그, 그렇지만」
「두 번은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내 말을 가로막은 그녀의 목소리는 무섭도록 평탄했고, 그 눈동자는 보는 것을 얼어붙을 만큼 날카롭고 냉랭하였다. 눌리는 것 같은 감각에 무심코 뒷걸음질을 치고 만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나를 확인하고 몇 초 뒤에 시호 씨는 이쪽으로 등을 돌린다. 그리고 그대로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이 섬에서 연명하고 싶으시다면, 얌전히 있으면 됩니다.」
「……어?」
반사적으로 되묻는다. 이 이상 말은 없었고 그녀는 걷기 시작한다.
복도의 안쪽으로 떠나는 시호 씨가, 내 쪽으로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
섬으로 떠내려 오고 얼마나 지난 걸까. 정확히 셀 기력조차 없다. 그저, 그 와중에도 섬이나 저택에 대한 알게 된 것은 아주 조금 뿐이다.
저택의 주인인 “그 사람”은, 저택 부지에서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손님이 없는 지금에선 식사 시간을 제외한 자신의 방에서 나온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에 비해 메이드인 시호 씨는 저택을 떠나는 일이 많다. 저택 정면의 정원을 손질하거나, 며칠에 한 번 산으로 가는 것 같다. 오늘도 방금 전 대화 후, 혼자 산으로 나갔다. 산에서 돌아온 그녀는 큰 바구니를 들고 있고, 그 내용물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일 때도 있으면 극히 평범한 일용품일 때도 있다. 그 덕에 『정기선과 교환을 하고 있다』라는 것은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이 섬에서의 내 위치는 사실상 죄인. 그 때문에 저택 문을 나가는 것도 기본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빠져 나가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 때는 시호 씨에게 발견되어 “벌”을 받았다. 그 때는 벌로 끝났지만, 아마 다음은 없겠지.
그만큼 부지 내에서의 행동은 비교적 자유롭다. 저택의 방은 엄중히 봉쇄되어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으나, 그것을 제외하면 돌아다니는 것은 가능하다. 이 저택에는 창고나 서재 같은 다양한 용도의 방이 존재한다는 것을 산책하면서 알았다. 독서는 좋아했지만, 이런 곳에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 없다, 머문 적도 없지만.
그리고 이날도 나는 뒤뜰로 발을 옮겼다. 손질되어 있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뒤뜰에 있는 탁 트인 곳으로.
그곳에는 나뭇가지가 무수히 꽂혀 있고, 일부는 이미 썩어있었다. 그 중에 맨 앞에 있는 4개의 그것…… 나뭇가지 십자가 앞에 나는 쭈그려 앉았다.
「……」
석양을 등지며 가만히 그것을 바라본다. 나뭇가지 밑에는 아무것도 묻혀 있지 않다, 말하자면 그냥 장식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존재였다.
「……윽. 으으…… 히끅……」
양쪽 눈에서 끝없이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간다. 여기에 오면 감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되어버린다.
「엘, 레나……. 엘레나아……! 선생님……!!」
엄청 좋아했던 친구들. 엄청 좋아했던 선생님들.
조금 전까진 옆에 있었는데 이젠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 존재의 추억이 흘러나온다. 뺨을 타고 떨어진 눈물이, 뚝뚝 나뭇가지가 박힌 땅을 적신다.
이야기에서는 「눈물이 마르다」 같은 표현이 있지만, 그런 건 거짓말이다. 슬픔은 결코 말할 수 없으며, 눈물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 얼마나 눈물을 흘러도 이 감정이 사라지진 않는다.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하게 된 걸까. 어째서 나만 살아남은 걸까.
저택에서 눈 뜨고서 자신에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물은 것. 나 혼자 살아남았다고 해도 의미가 없어…… 섬에 떠내려 와 처음 품은 감정이, 칼날처럼 가슴을 찌른다. 그 말처럼 나만 이런 형태로 생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지금 내 처지는 살아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죽어버리는 게 나을 상태. 엘레나와 선생님이 없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이뤄지지 않는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도 견딜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고,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고 결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못하였다. 누가 멈추게 한 게 아니다. 커튼을 묶어 로프를 준비했을 때도, 나이프를 방에 몰래 들고 돌아갔을 때도,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나아가지 못했다. 이대로 계속해서 살아도 절망밖에 없는데, 아주 조금의 용기조차 나에게는 없다. 그게 너무나 비참하여 괴로웠다.
이건, 나에게 주는 벌일지도 몰라.
함께 떠내려 온 세 사람을 위한 것과는 다른, 또 하나의 십자가를 보며 나는 스스로를 타이른다.
저택에서 만난 소녀, 이오리 씨. “그 사람”의 딸로 소개된 그녀는 내가 눈 떴을 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였지만 사실은 지금의 나 같은 입장이었겠지. 모든 것을 빼앗겨, 속박되어 있었던 불쌍한 존재. 우리들에게 일어날 일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오리 씨는 계속 무서워했었구나. 그리고 그 날 저녁 이오리 씨가 꽃을 바치고 있던 것은 분명 그녀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 이 장소가 나에게 있어 그렇듯이, 이오리 씨에게 있어서 신성한 장소였었겠지.
그런 것도 모른 채, 나는 그 후, 식사 자리에서 그걸 말해버렸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부서져버렸고, 목숨을 빼앗겼다. 이오리 씨는 내가 죽인 거나 다름없겠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 그녀와 같은 처지로 여기에 있다. 이오리 씨에겐 여기서 몇 번이나 사죄했지만, 그런 걸로 이 죄가 사라지진 않는다. 이 지옥 같은 세계를 지내는 것이 나에게 내려진 벌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윽」
구역질이 지독하게 난다. 뱃속을 꽉 조이는 느낌에 빠진다.
그래, 정확히 말하면, 모두는 여기에 있는 거다. 그 날 무리하게 입 안에 머금게 한 것에 의해, 내 일부로서, 여기에. 이 사실을 뇌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이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미, 안……. 엘레나, 미안…… 미안, 해……」
앓듯이 친구의 이름을 부른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나는 다시 한 번 그녀와 만나고 싶었다. 그 태양 같은 미소로 나를 웃어주길 바랬다. 곁에 있어서, 함께 시간을 지내고 싶었다. 그게 내 소원이었다.
「……태양」
뒤에 놓아두었던 방금 전 꺾은 꽃을 살며시 손에 든다. 그 날 이오리 씨가 바친 것과 마찬가지인 거베라라는 꽃. 이 저택 정면의 정원에 심어져 있던 것이다.
당신은 나의 태양. 오렌지 거베라에는 그런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 나는 살며시 그 꽃을 십자가 앞에 바쳤다.
「아카네 님」
「……헷」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이상한 목소리를 내버렸다. 두려워하며 뒤돌아보자, 천으로 덮인 바구니를 손에 들고 있던 시호 씨가 잡초를 밟으면서 나를 보고 있다. 산 너머 취락에서 돌아온 것인가, 그녀가 여기에 온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어, 어째서, 여기에」
「……조금 있으면 해가 집니다. 저택 안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입이 잘 돌아가지 않는 나에게, 그저 그렇게 말하는 시호 씨. 석양빛 그늘에 가려져 그녀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고, 그 목소리에서 감정을 알아차리긴 어렵다.
「……아카네 님」
「네, 네……」
한 번 더 이름을 불린다. 세 번째 이후 시호 씨는 말 이외의 것도 휘두르게 된다. 그걸 알고 있기에 나는 당황하면서도 순순히 일어나 저택으로 돌아갔다. 가슴속을 절망으로 가득 채우면서.
*****
그 비극의 밤, 묘에 대해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 한 뒤, 이오리 씨는 끌려갔다. 그건 “그 사람”과 시호 씨에게 비밀로 한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오리 씨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던 게 알려진 이상, 목숨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 시간이 되어도 시호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식사”에 거절반응을 내는 나에게 무리하게 “식사”를 섭취하게 했을 뿐이다. 그 때 휘두르는 손에는 일절의 자비도 없었지만, 거꾸로 말하면 그 이상의 일은 하지 않았다. “그 사람”도 평소처럼 즐거운 듯이 식사를 맛 볼 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살았다고 하는데, 나에게 있어선 그게 어쩐지 무서웠다.
위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하고, 기진맥진해진 몸을, 침대에 묻는다. 매일 밤 기분 좋게 잘 수 있는 심경은 아니다. 아침까지 우울한 시간을 보내거나, 기절하듯이 의식을 놓거나 두 가지다.
암흑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오늘 시호 씨의 언동에 대해. 오늘 시호 씨의 언동에는 위화감을 느끼는 일이 있었다. 표면상으론 주인을 섬기는 충실하고 냉철한 메이드. 그러나 취사장에서 살짝 내비친 감정, 뒤뜰에 있던 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것, 그건 충실한 메이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의 본심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연명하고 싶다면, 얌전히 있을 것』
아침에, 나에게 못을 박듯이 시호 씨는 그렇게 말했다. 「얌전히」라는 것은 시키는 대로 순종하라는 것일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것일까.
「……그런 거, 싫어」
얌전히 있으라니 못해. 받아들이라니 못해. 여기서 연명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벌이는 미친 연회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일을 계속해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차라리 부서져버리는 게 편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건 즉, 내가 나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엘레나들이, 내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악마의 소행을 해나간다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절대로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아.
게다가 여기에 있으면 언젠가 나도 살해당한다. 또 언젠가, 우리들처럼 누군가가 떠내려 왔을 때. 나와 이오리 씨가 그랬듯이, 내가 죽고 다른 누군가가 이 처지가 될 때가 온다. 여기서 연명한다 해도 희망은 전혀 없다.
받아들여도 절망, 받아들이지 않아도 지옥. 그렇다면, 나는 뭘 할 수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그대로 나는 아침까지 천장을 쳐다보았다.
「잘 먹었어. 오늘 아침 메뉴도 절품이었단다」
「칭찬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
아침 식탁. 기분 좋게 입가를 닦는 “그 사람”과, 담담히 정리를 하는 메이드.
눈물과, 강제로 입가에 옮겨진 끔찍한 액체로 엉망이 된 얼굴 채로 입가를 억누르면서 나는 화장실을 향하려고 했다.
두 사람은 그런 나를 신경도 안 쓰고 계속해서 대화한다.
「그런데 시호. 슬슬 새로운 글라스를 원해. 몇 개가 못쓰게 되었고」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받으러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킥킥거리며 저택의 주인은 웃는다.
그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가만히, 한 가지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
「하아…… 하. 으으……」
산길을 내려가면서, 격한 고동을 억누르기 위해 가슴에 손을 댄다. 탈 것 같은 땡볕 아래, 흘러나오는 땀으로 옷이 달라붙어 기분 나쁘다. 조금만 더 가면 숲에서 빠져나가. 그렇게 자신을 격려하면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식후. 정리를 끝내고 저택을 나가는 시호 씨를 쫓아 나는 산으로 발을 옮겼다.
들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무섭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공간에 머물 생각은 없었다.
시호 씨는 『받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즉, 오늘은 정기편이 섬에 오는 날이라는 것. 그 배에 탈 수 있다면, 이 섬에서 도망칠 수 있다──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희망. 어차피 언젠가 저버리고 말 목숨이라면, 힘껏 발버둥 치고 싶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는 행동으로 옮겼다.
시호 씨는 섬의 주민이어서 그런지 산을 숙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전에 내가 엘레나와 선생님과 오른 산길에서 벗어난 작은 짐승 길을 그녀는 지름길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도 그 길을 사용하는 것은 주저하였다. 그곳은 다니는 것이 익숙해진 시호 씨니까 사용할 수 있는 길이어서, 내가 그 길을 지나 무사히 숲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초목이 많은 길은 그만큼 들킬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릴 것을 각오하면서도 나는 큰 길을 가기로 선택한 것이다.
「시호 씨……」
산을 걸으면서, 문득 그녀를 생각한다.
시호 씨의 태도는 어젯밤부터 무엇도 변하지 않았다. 과묵하며, 냉철하고 주인에게 충실한 메이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도, 그녀가 알면 분명 나를 무사히 두지 않겠지. 그런데도 나는, 시호 씨에게 이 이야기를 해서 함께 섬을 떠나지 않겠냐고 권해야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걸 생각한 건진 모른다. 어쩌면 협력해줄지도 몰라, 그런 헛된 기대가 있던 걸까. 그녀에겐 인간의 마음이 조금 남아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결국 시호 씨에게 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이미 그녀에게 경고를 받아서 더욱이 이런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선 시호 씨도 원수다. 엘레나와 선생님들의 목숨을 빼앗고, 나를 이 섬에 가둬 둔 “ 그 사람”의 부하. 그렇게 자신에게 말했다.
미혹을 끊듯이 머리를 흔들어 뇌 속에서 내쫓는다.
이 섬을 나간다. 지금 생각할 것은 그것뿐이다.
해안가에 파도가 치는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곧 숲을 빠져나가 해안가로, 내가 떠내려 온 모래사장과는 반대에 있는 모래사장에 다다르겠지. 제대로 식사를 섭취하지 않은 것도 있어 꽤나 시간이 걸려버렸다. 해는 기울어져, 저녁때가 다가오고 있다. 아직 배는 있는 걸까. 이미 떠나 버린 것은 아닐까. 초조한 마음으로 등을 떠밀면서 어떻게든 걸어 나간다.
「앗……」
갑자기 시야가 트인다. 하얀 모래사장에, 군청색 바다.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달아오른 살갗을 어루만지는 바닷바람이 기분 좋다. 목적 장소에…… 해안가에 다다른 것을 알았다.
「……배. 배는!?」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없다. 아직 목적 자체는 달성하지 않았다. 여기서 배에 타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려. 주변을 둘러보자, 해안가 저 멀리 조그맣게 건물의 모습이 보인다. 저건 정상에서 보였던 취락이라는 거겠지. 단, 정말로 사람이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취락 근처에서, 바다에 떠있는 하얀 물체도 보였다. 명확히 보이진 않지만 저건 분명 배다. 지친 몸을 채찍질하며, 나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가까이 다가갈수록 확인할 수 있었던 그 모습은 바로 배였다. 그다지 크진 않았지만, 짐을 옮기기엔 적당한 사이즈다. 사람 한 명 들어갈 여유는 분명 있다.
살 수 있어. 여기서 도망칠 수 있어. 이걸로 이제, 고통스럽지 않아질 수 있어.
절망으로 물들어져 있던 가슴속에 희미하게 켜진 희망, 그게 점점 커져 힘으로 변한다.
「드디어…… 나는……!」
앞으로 조금. 앞으로 조금 더 가면, 배에──
그 때였다.
엔진을 거는 소리가, 바닷가에 울린다.
부르르르……하는 회전음과 함께 배가 조금씩, 하지만 착실히 바닷가에서 멀어져 간다.
「엣…… 기, 기다려……!」
목구멍에서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짜내려고 한다. 메마른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쉬었지만 그래도 온 힘을 다해 불러 세우려 한다.
「부탁이야…… 기다려……! 살려, 줘……!」
누군가에게 닿아줬으면 해. 그렇게 빌며 불렀는데도 배는 허무하게, 무정하게도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 조금인데. 포기하고 싶지 않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살려줘……! 부탁, 이, 야……!?」
직후. 입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온다. 동시에, 복부에 격통이 일어난다.
「아…… 어……?」
배에 댄 손을 물들이는 액체는,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홍색. 엄청난 양의 피가, 내 입과 배에서 흐르고 있었다.
「으, 아……」
출혈의 사실을 몸이 인식해, 힘이 빠진다.
모래사장에 무릎을 꿇고 붉게 물든 모래를 멍하니 바라본다.
「……충고는 했을 텁니다. 연명하고 싶으시다면, 『얌전히 있을』 것, 이라고」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
딱딱한 움직임으로 돌아보자,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안대의 소녀가 그곳에 있다. 손에는 나이프를 들고, 그 나이프보다 더욱 예리한 눈동자로 나를 보면서.
「시, 호……씨」
「주인님께 듣지 못하셨나요. 이 섬의 모든 것은, 주인님의 것. 저택도, 산도, 그곳에 사는 동식물도, 그리고……우리들도」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면서 시호 씨는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당신은…… 아니, 당신의 안에는, 주인님의 소중한 아가씨의 일부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게 섬에서 나가버리는 것이, 허락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윽!」
등줄기에 한기가 서린다. 어둠에 가려져 있었던 수수께끼의 답이 한 가지만 밝혀진다. 배를 관통 당했을 터인 내가 어째서 살아 있는가. 거기에서 깨어난 내가 기억하고 있던 신체의 위화감은 무엇인가. 애초에, 나나 이오리 씨는 무엇을 위해 살려두었던 걸까. 그것에 이어지는 답이.
「사람의 몸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그걸 보관하는 건 매우 힘듭니다. 다시 새로운 그릇이 올 때까지 관리해야 하니까요」
게다가, 하고.
시호 씨는 깜짝 놀라며 떨고 있는 나에게 계속해서 말한다.
「당신도 사실은, 알고 있었잖습니까? 이 섬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가령 도망쳤다고 하여도, 그 후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끝없는 고통이라는 것을」
시호 씨의 말이, 칼보다 깊고 날카롭게 꽂힌다.
그녀의 말대로, 사실은 알고 있었다. 용케 섬에서 도망쳐도, 이 가슴을 차지하는 절망과 죄악감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을. 늦든 빠르든, 내 마음은 부서졌다는 것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결국, 목적을 만듦으로써 일시적으로 이 의식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 것을.
바로 뒤에 선 시호 씨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는 내 머리카락을 잡아, 모래사장으로 끌어 넘어트린다. 그리고 위를 향하게 된 내 위에 올라탔다.
「아……」
그 때, 시호 씨의 얼굴을 눈앞에서 본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인은, 나를 내려다보는 시호 씨의 표정.
그건 처음 보여준,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것. 눈동자에 슬픔과 동정을 띠며,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이 없어도 전해져오는, 인간의 삶의 감정 그 자체.
그걸 본 순간, 나는 마음속 깊이 후회하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했던 걸지도 몰라. 어쩌면 정말로, 시호 씨와의 결말은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몰라.
피가 빠져서 몽롱한 의식 속에서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
「……」
다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몇 초간 눈을 감은 시호 씨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철가면을 쓴 하수인이 되어 있었다. 나이프를 강하게 쥐어, 겨냥할 수 있도록 치켜들었다.
「…………」
그걸 그저 바라보는 내 얼굴은, 분명 기묘한 표정이었을 게 분명하다.
절망과 확신, 포기와 깨달음.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내 머릿속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진정되어 있었다.
황혼의 햇빛이, 우리들을 희미하게 비춘다.
황혼의 하늘 밑에서, 근소한 정적을 거치고 그 칼은 내리쳐진다.
매우 느릿하게 보이는 그 움직임. 나이프를 휘두르는 팔이 느린 게 아니라, 내 시간이 흐르는 것이 느리게 느껴진 것뿐이다. 자신도 신기할 정도로 머리는 냉정하지만, 저 칼에서 도망치진 못한다.
확실한 죽음을 예감하면서 나는 아련히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즐겁게 지냈어야 할 선상에서 있었던 일. 섬에 떠내려 왔을 때. 거기서 일어난 참극. 참극이 끝나도 계속해서 이어진 지옥. 그 안에서, 어쩌면 서로 이해했을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해.
하지만, 이제 됐어.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을 멈춘다.
이걸로 드디어.
드디어, 끝나구나.
나는 마지막에,
그렇게, 생각했다.
End1 : 『운명에서 도망쳐서』
후기
타이틀 및 작중에 대한 해석과 일부 해설
・「누구를 위해 연회는 계속되는가」(이번 작품 제목)에 관해
『누구』라는 것은 특정한 한 개인이 아니다. 저택에 살아가는 세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
주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메이드와 딸도 연명하기 위해 끝없이 반복하는 『연회』를 극복해야만 한다.
・주인에 관해
이번 작품에서는 굳이 이름도 대지 않고 정체를 언급하는 일도 거의 없다. 이번 작품은 노노하라 아카네의 시점이며, 그녀는 주인의 정체 해명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 만약 그녀가 다른 행동을 취했다면, 주인의 수수께끼를 해명했을지도 모른다.
・『딸』이라는 입지에 관해
이번 작품에 있어서, 주인의 진짜 딸의 장기를 메워 넣은 『그릇』으로서의 존재. 장기를 그릇의 안에 넣어, 그릇에게 “식사”를 섭취하게 함으로서 활동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렇다곤 하나 그릇이 상시 필요한 것은 아니며, 새로운 그릇의 확보를 위해 시간을 두는 것도 가능하다.
・메이드에 관해
주인을 대신해 실무를 수행하는 측근. 원래는 섬에 표류한 인물이었으나, 한쪽 눈을 대가로 연명하여 주인을 섬기게 되었다. 임무 수행에 망설임은 없지만, 인간으로서의 감정도 남아있다.
・주인공에 관해
섬에 떠내려 온 소녀. 『딸』이 된 것은, 다른 표류자들과 비교해 속박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선택에 의해 자신만이 섬의 숙명에서 도망치는 걸로 되었지만, 선택에 따라서는 다른 결말도 기다리고 있었을까.
・결말에 관해
주인공이 취한 선택에 의해 결말은 변한다. 테마곡인 쿠루리우타라는 것은 섬에서 반복되는 여러 참극 전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이 주인공이 평행세계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작은 네타 : 뒤뜰 묘에 관해
이전부터 메이드는 존재를 알고 있으며, 주인은 애초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나뭇가지 십자가는 과거 표류자(희생자)의 묘이며, 주인이나 메이드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것도 있을지 모른다.
이번 작품에서 묘사되어, CD본편에도 등장한 「오렌지 거베라」는 현시점에선 어떤 캐릭터를 가리키고 있다는 해석이 주류지만, 이 작품에 있어선 어디까지나 「당신은 나에게 있어 태양」이라는 메시지를 나타내기 위한 존재.
해설 끝.
집필 중에 다른 해석을 얻거나, 다른 분들의 고찰이 납득되기도 하였습니다만 초기 자신이 해석한 것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황혼의 늪」은, 찬반양론이어야 마땅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이돌들의 멋진 연기를 맛볼 수 있는 역작이 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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